입고 No.006 사람 1901년 미국

그늘에 앉는 데 5센트를 받았다

텅 빈 밝은 공원에 초록 등나무 흔들의자 하나가 놓여 있고 팔걸이에 빈 나무 가격표가 매달려 있다. 옆에 회색 제복의 점원이 서 있다

공원 벤치는 공짜였습니다.
그늘은 아니었습니다.

1901년 뉴욕. 한 사업가가 공원 의자에 요금을 붙였다.
그늘의 벤치는 밀려났고, 그해 여름 더위는 여드레 동안 물러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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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정보
품목번호
006
품목
사람
오늘의 점원
의자 요금 징수원
원산지 (사건의 무대)
미국 뉴욕
제조연도
1901년
상품구성
본품 8 + 덤 1
표 두 장을 양손에 든 점원과 좌우에 놓인 쿠션 없는 초록 의자와 쿠션 있는 초록 흔들의자, 뒤쪽에 개봉한 나무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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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센트 의자와 5센트 의자가 놓였다

1901년 5월, 뉴욕의 공원 몇 곳에 초록색 등나무 흔들의자가 나타났다. 센트럴파크에도,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도 놓였다.

가져다 놓은 쪽은 컴포트 체어 컴퍼니(Comfort Chair Company). 브로드웨이 1133번지에 사무실을 둔 회사였고, 대표는 오스카 스페이트(Oscar Spate)였다.

공원국장 조지 클라우센(George Clausen)이 허가를 내줬다. 5년 동안 공원에서 유료 의자를 독점하는 조건으로, 시에 내는 돈은 연 500달러였다.

요금은 3센트와 5센트였다. 5센트 표로는 두 종류 모두, 3센트 표로는 3센트 의자만 이용할 수 있었다. 표는 그날 하루, 어느 공원에서나 유효했다.

스페이트가 나중에 신문에 밝힌 수량은 공원에 놓인 의자 약 500개, 계약 수량은 3,000개였다. 의자 한 개 값은 5달러였다.

공원에 등급이 생겼다.
5센트는 어디든, 3센트는 거기까지.
그늘과 볕이 화면을 반으로 가른 공원, 그늘에는 아무도 앉지 않은 초록 유료 의자와 점원이, 볕에는 낡은 나무 벤치에 앉아 이마를 가린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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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의 벤치가 밀려났다

의자만 놓았다면 그냥 장사였을 것이다.

그늘에 있던 무료 벤치 일부가 그 자리에서 밀려났다. 벤치가 있던 그늘에는 스페이트의 의자가 들어섰다.

그늘에 앉으려면 이제 돈을 내야 했다.

스페이트는 자기 사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공원의 좋은 자리에서 「지저분한 게으름뱅이들」을 몰아내는 일이라고. 이 말이 신문에 실렸다.

무료 벤치는 볕으로 갔고,
유료 의자는 그늘로 왔다.

공원의 무료 벤치가 전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된 것은 그늘의 좋은 자리가 유료로 바뀐 것이다.

흰빛이 내리쬐는 공원에서 더위에 주저앉은 사람 셋, 아무도 웃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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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드레 동안 물러가지 않았다

하필 그해 여름이었다.

6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여드레 연속으로 뉴욕의 낮 기온이 섭씨 37도(화씨 99도)를 넘었다. 당시로서는 기록이었다.

그 여름 뉴욕에서 더위로 수백 명이 숨졌다.

냉방 장치가 없던 시절이다.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에게 나무 그늘은 피난처였다.

그리고 그 그늘에는 유료 의자가 놓여 있었다.

앞으로 기울여 포개 쌓고 밧줄로 묶은 초록 흔들의자 더미와 그 옆에 선 점원, 좌판에 구멍이 뚫린 의자 하나가 따로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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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내고 앉아서, 그 의자를 부쉈다

사람들은 앉되 돈을 내지 않았다. 일부러 5센트짜리 의자를 골라 앉아서 버텼다.

돈을 내고 앉은 다음 그 의자를 부수는 사람도 있었다. 5센트로 산 것은 앉을 자리였지 의자가 아니었다.

스페이트는 방식을 바꿨다. 징수원들에게 의자를 쌓아두고, 돈을 먼저 낸 사람에게만 내주라고 지시했다.

의자를 쌓아놓자 공원에 빈자리가 늘었다. 그늘은 여전히 그의 것이었다.

앉고 나서 내던 돈을,
내고 나서 앉게 했다.
낮은 화단 난간 너머로 호텔 쪽을 향해 달아나는 점원과, 긴 그림자를 앞으로 뻗으며 뒤쫓는 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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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6일, 징수원이 호텔로 도망쳤다

7월 6일, 매디슨 스퀘어 파크.

징수원 토머스 털리(Thomas Tully)가 돈을 내지 않은 사람을 의자에서 끌어냈다. 옆에서 야유하던 사람도 한 대 쳤다.

그러자 사람들이 움직였다. 1,000명 가까운 군중이 털리를 쫓았다. 털리는 길 건너 피프스 애비뉴 호텔로 뛰어 들어가 숨었다.

7월 8일에는 워스 광장에 1,500명 이상이 모였다. 아이들은 대놓고 의자에 앉아 돈을 내지 않았고, 어른들은 그걸 지켜봤다.

며칠 전까지 사람을 쫓아내던 징수원이,
이제 쫓기고 있었다.

군중 수는 당시 신문의 추산이 후대 자료에 전재된 것이다. 정확한 인원은 확인할 수 없다. 징수원의 이름도 자료에 따라 Tully와 Tulley로 갈린다.

흐린 하늘 아래, 짙은 남색 제복에 둥근 헬멧을 쓴 경관이 돌아서고 회색 제복의 점원만 의자 곁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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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손을 뗐고, 판사가 명령을 내렸다

처음에 경찰은 징수를 도왔다. 돈을 내지 않으면 끌어냈다.

7월 9일, 경찰국장 마이클 머피(Michael Murphy)가 지시를 바꿨다. 경찰은 더 이상 스페이트의 징수원을 돕지 않는다. 치안판사가 영장을 내주지 않는 한 체포도 하지 않는다.

받아낼 방법이 없어졌다.

7월 10일 밤, 매캐덤 판사(Justice MacAdam)에게서 금지명령이 나왔다. 다음 날 그 명령이 공원위원 세 명에게 송달됐다. 클라우센 위원과 뫼부스 위원은 말없이 서류를 받았다.

세 번째 위원은 그러지 않았다.

브라우어 위원《이브닝 월드》 그날 석간

「나한테 이 서류를 보낸 건 멍청한 짓이다.
나는 브루클린과 퀸스 말고는 아무 자치구와도 상관이 없고,
거기엔 스페이트 의자가 하나도 없다.」

5년짜리 독점권이
두 달을 못 갔다.
높은 창에서 빛기둥 하나가 떨어지는 창고 안, 팔리지 않은 초록 흔들의자들 사이에 홀로 선 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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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싸우겠다」

명령이 송달된 그날, 스페이트는 《이브닝 월드》에 독점 성명을 보냈다.

신문은 키가 5피트 4인치밖에 안 되는 그를 분노에 차 싸울 기세라고 묘사했다. 스페이트는 정당한 사업에 1년과 5,000달러를 들였다며, 법적 수단이 다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클라우센이 의자를 사주겠다고 제안한 모양이었다. 스페이트는 그 제안을 칭찬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고, 그가 통 큰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거절했다. 그걸로는 손실이 메워지지 않는다고.

오스카 스페이트《이브닝 월드》 1901년 7월 11일

「공원은 가난한 사람만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의 것이기도 하며,
의자를 빌리는 것은 전적으로 선택이다.」

두 달 전 그는 공원에서 「지저분한 게으름뱅이들」을 몰아내겠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의자는 매일 도착하고 있었다. 3,000개는 이미 다 만들어진 뒤였다. 새 의자들은 공원 대신 창고로 들어갔다.

등받이에 흰 글씨로 FREE라고 쓰인 초록 흔들의자에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고, 오른쪽 끝에서 점원이 뒷모습으로 걸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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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무료」라고 썼다

끝까지 싸우겠다던 사람은 결국 싸우지 않았다.

허가가 철회되자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 사람들이 모였다. 1만 명이었다고 전한다. 그들이 한 일은 의자에 앉는 것이었다.

남은 것은 의자였다.

일부는 클라우센이 사들여 공원에 그대로 놔뒀다. 그가 「통 큰」 제안이라며 거절했던 바로 그 방식이었다. 등받이에는 「무료」(FREE)라고 크게 써 붙였다. 같은 의자였다. 글자만 바뀌었다.

나머지는 스페이트가 워너메이커 백화점에 팔았다. 백화점은 그것을 「역사적인 의자」라는 이름으로 진열해 팔았다.

시장 로버트 밴 윅(Robert Van Wyck)은 이 일을 두고 뉴욕에 무료 벤치가 11,000개뿐인데 50,000개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넉 달 뒤 재선에 실패했다.

앉는 데 5센트를 받던 의자가
기념품이 됐다.
대충, 한마디

앉을 자리를 팔려던 장사가, 끝에는 의자만 팔았네요.

끼워팔기

파리에서는 오랫동안 아무도 화내지 않았다

흐린 회청색 파리의 정원, 왼팔에 「징수원」 완장을 두른 점원에게 짙은 초록 금속 의자에 앉은 사람이 동전을 건네고 있다

뉴욕이 두 달 만에 의자를 뒤집는 동안, 파리는 같은 일을 오랫동안 하고 있었다.

뤽상부르 공원에서는 벤치는 공짜였지만 의자는 빌리는 물건이었다. 18세기부터 그랬고, 1872년부터는 그 권리를 촛불 경매로 팔았다. 짧은 초에 불을 붙이고, 꺼질 때까지 부른 최고가가 낙찰이었다.

1920년 요금. 보통 구역 의자 0.20프랑, 팔걸이의자 0.30프랑. 음악회 구역은 0.25에서 0.40프랑. 공식 행렬이 지나가는 길목은 0.50프랑이었다.

돈을 받으러 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나이 든 여성이었고, 셰지에르(chaisière)라고 불렸다. 단정하게 입고, 공손하고, 식별용 완장을 차야 했다.

1915년, 업자가 상원에 항의했다. 손님들이 자기 접이의자를 들고 오는 바람에 돈을 못 받으니, 가져온 의자에 앉은 사람에게도 같은 요금을 받게 해달라고.

이 장사는 1974년에야 끝났다. 상원이 마지막 업자에게서 의자를 전부 사들이면서.

뉴욕은 두 달 만에 의자를 던졌고,
파리는 오랫동안 동전을 냈다.

1915년의 그 요청이 실제로 받아들여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확인된 것은 업자가 그렇게 요청했다는 사실이다.

매입처

《The Evening World》 1901년 7월 11일 목요일 석간 · Spate Says He’ll Fight to the End — Pay-Chair Man Defiant and Praises the Offer of “Big-Hearted” Mr. Clausen · 지면 이미지로 직접 확인. 스페이트 본인의 독점 성명(1년의 준비와 5,000달러, 「공원은 부유한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클라우센의 매입 제안을 칭찬하며 거절), 공원에 나가 있던 의자 약 500개와 계약 수량 3,000개, 의자 한 개 5달러, 7월 10일 밤 매캐덤 판사의 금지명령과 다음 날 송달, 브라우어 위원의 발언

Untapped New York — NYC’s Great “Rocking Chair Riots” of 1901 in Madison Square Park · 그늘의 벤치와 유료 의자, 돈을 내고 앉은 뒤 부수는 항의, 의자를 쌓아두고 선불로 바꾼 대응

Ephemeral New York — The rocking chair riot that riled up New Yorkers · 의자 200개, 징수원 토머스 털리와 피프스 애비뉴 호텔 피신, 1,000명의 추격, 1만 명의 축하, 워너메이커 매각

Sénat — 《제3공화국 시절 뤽상부르 공원의 하루 · 의자》 · 18세기부터의 유료 의자와 양허, 1872년부터의 촛불 경매 낙찰, 1920년 요금(보통 0.20·팔걸이 0.30프랑, 음악회 구역 0.25·0.40프랑, 공식 행렬 0.50프랑), 셰지에르의 복장·식별 완장·의자당 10상팀 수수료와 전과 없음 요건, 1915년 업자의 요청

Jardin du Luxembourg · Sénat — 《의자》 · 18세기 유료 의자의 시작, 1955년 모델 표준화, 1974년 상원의 무료화와 마지막 업자 재고 매입

이 페이지의 그림은 AI로 제작한 이야기용 연출이며, 실제 인물의 외모나 당시 현장을 재현한 기록 사진이 아니다. 연도와 수치는 자료마다 표기가 달라 확인되는 값을 기준으로 적고 갈리는 부분은 성분표와 보충에 남겼다. 1901년 7월 11일자 지면은 원문 이미지를 직접 확인했고, 그 밖의 옛 기록은 자료에 전재된 것을 확인했다.